우리 막내 조카를 너무 사랑하지만 이안이를 만나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제한적입니다. 조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놀면서 장난감에 대해서 물어보지요.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맞는 대화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도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공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쓰는 편지에서 그들을 “어린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직 육신에 속해 있어서 (미성숙해서) 신령한 것을 나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영적성숙
영적으로 성숙해 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 "영정 성숙"은 예수님과의 친밀하고 지속적이고 인격적인 관계 안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인격적이라 함은 지, 정, 의의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아는 것, 그 앎을 통해 생기는 예수님을 향한 열망, 그리고 그 마음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의지적 행동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육신의 옷을 벗고 예수의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과 친밀하고 지속적이고 인격적인 관계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 존스토트는 “그리스도에 대한 참되고 신선한 시각”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예수님의 모습과 말씀들을 생각해 봅니다.
겸손 속에 비치는 영광스러움..
순종과 복종을 통한 통치..
긍휼과 조화를 이루는 공의로우심..
온유하심 가운데 묻어나는 위엄..
단순함속에 담긴 탁월한 지혜..
그리고 십자가에서 보이신 한없는 사랑..
생각만 해도 우리의 마음에 경외심이 생기는 예수님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참되고 신선한 시각은 단순히 예수님을위대한 성자 중에 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예수님과의 성숙한 관계의 기초입니다. 즉, 관계는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참된 시각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조명을 들고 성경 말씀에 눈과 귀를 기울일때 그리스도를 향한 참된 시각은 자라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