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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NASB] For in i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BUT THE RIGHTEOUS man SHALL LIVE BY FAITH."  [Greek]

 

로마서의 본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남은 한 구절이 있습니다. 로마서 전체를 대표하는 구절이자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구절입니다.

 

15세기 로마 카톨릭 교회는 정치, 권력과 연관 되면서 점차 부패해 갔습니다. 교회는 겉으로는 성서와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 했지만 그 밑바닥에는 근대 철학의 영향을 받은 인간 중심적 사고가 깊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교회는 점점 타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타락의 결과 중에 대표적인 것이 면죄부 판매였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면죄부를 사면 구원을 받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매매가 일어난 것입니다. 면죄부를 팔았던 성직자들의 죄는 말할것도 없지만 그것을 샀던 당시 성도들의 죄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면죄부는 기득권의 탐욕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를 쉽게 사함받으려 했던 당시 성도들의 탐욕이 함께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마틴루터는 신앙적 양심을 따라 면죄부를 비판했고, 비텐베르크 성곽교회의 문 앞에 95개조 반박문을 걸었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루터가 세상을 떠나기 전, 1545년에 쓴 "자서전적 단편"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습니다.

 

나는 확실히 로마서에 있는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 특별한 열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때까지 내 길을 막고 있던 것은 내 심장 주위의 차가운 피가 아니라 로마서 1장 17절에 있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는 한 문구였다.

 

지금의 사회는 15세기 로마 카톨릭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복잡합니다. 현대의 기독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럽습니다. 실제로 면죄부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면죄부를 팔고 샀던 인간의 탐욕은 우리들 가운데 그대로 존재하는듯 합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른체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인간의 의에 사로잡혀 살아갈때가 많습니다. 믿음이 아니라 온갖 사상, 이념, 신학을 좇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 복음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은 탁월한 사상도 아니요, 탁월한 신학도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의 밭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우리 자신과 서로를 속박하고 죽이는 인간의 의(Self-Righteousness)가 지워지고, 참된 생명과 자유를 주는 하나님의 의(God's Righteousness)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 속에, 교회들 속에,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가 심겨지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구절을 다시한번 고백해 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