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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

(로마서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NASB] For the wrath of God is revealed from heaven against all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of men who suppress the truth in unrighteousness

 

로마서 1장 18절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경건치 않음에 대해서 임한다고 합니다. 
 
“경건”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예배당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잠잠히 기도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말과 행동이 점잖고 죄라면 짓지 않을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모습이 경건의 모양일 수는 있지만 경건의 본질은 아닙니다. 
 
불경건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는 “ungodliness”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은 없다고 하는 것,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 그것이 불경건이고 성경이 말하는 죄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부드러운 찬송을 부르지 않고 대중가요를 부르더라도 경건할 수 있고, 차분하게 기도하지 않고 춤을 추더라도 경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몸을 팔던 여인도 경건해 질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아무리 훌륭하고 선한 사람이 되어도, 심지어 아무리 경건한 모습으로 교회를 열심히 섬겨도 그 마음 속에 진정 하나님이 없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불경건할 수 있습니다.
 
불경건한 그리스도인 (Ungodly Christian)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찾아가는 "자기의 하나님"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삶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피상적 하나님"이 아닙니까? 기도한다지만 그저 주문을 외우듯이 기도하는 "막연한 하나님"이 아닙니까? 하나님으로 만족한다지만 늘 다른 것을 추구하는 "부족한 하나님"이 아닙니까? 혹시 우리가 믿는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자아"는 아닙니까?
 
성경이 나의 삶을 판단하는 근거가 아니라, 내 지식과 경험이 성경을 판단하는 근거일때가 많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 나의 것일때가 많습니다. 내 삶이 하나님 나라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에 일부일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런 하나님은 없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출33:18). 다윗은 환난 중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우심을 구했습니다 (시27:4). 우리도 힘을 다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신앙이라는 이름의 고상한 우상이 있다면 다 제하여 버리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완전하신 통치를 맛보며,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경험하고,
히나님의 빛나는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경건(Godliness)에 이르는 길: 예수
 
이제 인간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독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를 보이시며, 예수를 통해 공의롭고 온전한 통치를 실행하시며, 예수를 통해 무한하신 사랑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를 통해 그분의 영광스러움을 이 땅에 계시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7-9)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